빛으로 던져진 문장 : 회화는 조명이 된다  


정희라 / 미술평론, 미술사


거리의 인공조명은 어둠을 밝히는 조각으로 남는다. 신준민의 회화는 그 찰나의 조각을 붙잡으며, 빛이 말하는 것들을 회화의 언어로 번역한다. 그 언어의 문장에는 시간의 층위, 감각의 진동, 기억의 여운이 백색의 정동으로 떠다닌다. 신준민은 ‘조명 회화’를 통해 실제 조명이 그러하듯 몰입을 유도한다. 이는 시각적 서사를 제거하고 감각적 상태를 생성하는 방식이다. 이번 전시에서 신준민은 비추는 것과, 비추어지는 것-두 영역을 병치하여 자신의 조명 회화를 선보인다. 그 하나는 도시에서 마주한 인공 빛에 관한 회화 작업이고, 다른 하나는 비춰진 대상과 잔상에 관한 드로잉이다. 필자는 신준민의 빛과 대상을 그리는 작업을 < 조명이 된 회화 >로 보았다. 빛의 양가적인 면과 특성을 통합하는 이번 작업을 통해 그의 작업이 우리에게 던지는 감각의 사유들을 살펴보려 한다.

빛은 오래도록 진리를 드러내는 은유로 사용되어 왔다. 고대 철학에서 태양은 이데아의 계시를 상징했고, 중세 미술에서는 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성광으로 구현되었다. 이 맥락에서 ‘비추는 빛’은 인식과 통제의 주체이며, ‘비춰지는 대상’은 그 시선 아래 놓인 수동적 객체로 간주 되었다. 그러나 현대 시각 문화와 정동 이론, 미술 비평은 이러한 주체-객체, 조명-대상의 이분법을 해체한다. 신준민은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하여 빛과 대상의 관계를 실험한다.

그의 빛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신준민은 2013년부터 현재까지의 작업을 통해 동물원, 운동장, 경기장, 산책길의 풍경을 시각적 청각적 파장으로 변환하여 선보였다. 동물원을 그린 초기작에서는 구상화의 성격이 강했으며, 관찰자의 풍경을 그려내었다. 이후 산책자의 풍경으로 변화한 그의 작업은 사회와 일상의 모습에서 발견한 양가적인 것을 하나의 화면 안에서 조화로운 질서로 묶으며 빛을 그 중심에 두었다. < 겨울잠,2014 >, < Everywhere,2016 >, < Night Flight,2017 >,< Adventure,2018 >, < 빛이 지나간 자리,2021 > 전시를 통해 풍경 속 빛을 그리던 그는 < New Light,2022 > 전시에서 빛으로 기능하는 회화를 실험하고, < White Shadow,2024 >와 < White Out,2024 > 전시에서 백색의 빛을 화면 전면에 내세웠다. 그의 작업 과정을 살펴보면, 마치 빛을 만드는 것처럼 캔버스 위에 RGB의 색을 차례로 겹치고 쌓아 올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색의 균형을 맞추어 간다. 작가는 이 실험 속에서 빛을 대상으로 ‘묘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회화 전체를 하나의 조명처럼 작동하게 만든다. 인공 빛은 자연의 빛과 다르게 생성과 소멸을 작가가 주체적으로 조절할 수 있고, 인공 빛 앞의 작가는 장소와 상황에 따라 회화적 태도와 심리가 달라진다. 현대의 인공 매체, 물질로서의 회화, 비물질의 중첩에 관한 그의 지속적인 연구는 화면 속 빛이 구상과 추상 사이에 놓인 바라보는 것들과 아닌 것들의 교차 지점들을 품게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신준민은 그만의 빛을 감각의 구상화, 지각의 추상화로 변환시켜 왔다. 인공 빛을 다루는 개념 설치 작가인 플래빈이 네온 조명으로 공간을 조직하고, 터렐이 감광적 공간을 만들어낸 것처럼, 신준민은 화면 안에 인공조명을 그려냄으로써-회화로써 ‘정동적 조명 구조’를 설계한다. 따라서 그의 회화는 전통적인 묘사의 틀을 넘어서, 빛이 주체와 관계 맺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사유하게 만든다. 신준민의 조명 회화는 이러한 미술사적 맥락을 회화 내부로 다시 끌어들이는 동시대적 응답이라 할 수 있다.

관객은 그의 그림 앞에서 사건의 형상이 아니라, 사건 이후의 감각을 경험한다. 여기서 우리는 신준민이 선택한 모티프, 야구장의 조명에 주목하게 된다. 야구장은 행위와 규율, 응시와 흥분이 결합된 제도적 공간이며, 조명은 그 구조를 통제하는 시각적 장치다. 그러나 경기가 끝난 후에도 꺼지지 않는 조명은 제도의 기능을 벗어난 상태이며, 이는 장소에 사건의 부재와 정지를 강조한다. 승리와 환호의 순간이 아니라 고요와 정적을 감싸는, 필요보다 과도한 조명들은 감각을 봉쇄한다. 이때, 조명은 이미 끝나버린 서사, 사라진 구조 속에서 감각만이 잔존하는 상태를 드러낸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문 조명은 감각의 시간성을 넘어서 신화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와 같은 조명의 기능은 그의 회화에서 장면의 소거와 정동의 밀도화를 통해 시각화된다. 마수미가 말한 정동, 즉 감정 이전의 신체적 반응, 미분화된 감각의 진동은 그의 회화 앞에서 분명히 작동한다. 조명은 장면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우며, 그 지워진 자리에 정동의 압력을 극대화한다. 신준민은 , < 빛 숲 >과 같은 작품을 통해 이 조명-불꽃 축제의 불꽃, 가로등과 스포트라이트의 빛-을 추상적 색 덩어리로 변환시키며, 그것이 빛을 넘어서 ‘감각의 진공’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신준민의 화면은 빛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백색(White-out)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회화는 때로 빛 그 자체가 되어 관객을 감각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 경우, 회화는 창(window)인 동시에 조명(light)이 된다. 이러한 백색은 화면 안을 비추는 동시에, 화면 밖의 공간, 시선, 신체와 같은 우리의 감각을 함께 밝히는 조명처럼 작동한다. 그 아래에서 보는 자였던 우리는 비추어지는 자로 바뀌고, 응시하는 자에서 응시당하는 자로 전도된다.

빛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눈앞이 흐려진다. 또렷한 형상이 되기를 의도적으로 거부한 그의 발화하는 빛은 결국 주체와 대상 모두가 해체되며, 관객은 시각의 권력 구조가 무너진 자리에 남겨진 부유하며 떨어져 나온 색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지각은 더 이상 선형적 인식이나 대상 중심의 사고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흐르는 감각으로 존재한다. 빛은 더 이상 외부에서 무언가를 밝혀주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감각을 불러오는 에너지로 작동한다. 대상도 더 이상 외부로부터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감각 속에서 응축되고 진동한다.

그러나 그의 캔버스 위에는 빛 주변의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흔적들, 이를테면 구조의 잔상, 조명의 격자, 공간의 윤곽이 남아 있다. 이는 빛 < 안 >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빛이 지운 그 자리에도 여전히 잔류하는 대상이 있음을 깨우치게 한다.

동시에, < 구름 나무 >, < 잔상 연구 >와 같은 작업은 다시 형상의 회복을 드러낸다. 신준민은 눈에 보이는 구상적인 것들을 놓지 않고, 그들을 통해 빛의 생명력을 깨워 불러낸다. 낮의 조명들은 더 이상 침묵과 무표정의 빛이 아니다. 그것은 꽃다발처럼 피어나고, 나무처럼 자라난다. 밤의 빛은 사라진 사건을 애도한 뒤, 낮의 빛이 되어 다시 자라나는 생명으로 돌아온다. 신준민의 조명은 돌아올 수 없는 것을 지각하는 장치이며, 살아남은 감각이 다시 피어나는 장소이다. 이렇게 신준민의 화면은 조명이 된다. 그리고 그 조명 아래, 우리는 새롭게 감각한다.